근대건축 · 1927년 준공
미상 (건축주 최용해)
근대 4층 조적조 병원 및 문화 재생 공간
부산 최초의 근대식 개인 종합병원. 붉은 벽돌과 원목 계단실이 남아 있다.
- 건축가
- 미상 (건축주 최용해)
- 준공
- 1927년
- 양식
- 근대 4층 조적조 병원 및 문화 재생 공간
- 주소
- 부산광역시 동구 중앙대로209번길 16 길찾기
먼저 알고 갈 이야기
부산역 맞은편의 이 붉은 벽돌 건물은 1927년 한국인 의사 최용해가 세운 개인 종합병원이었지만, 병원으로 쓰인 기간은 5년 남짓이다. 이후 중국 요리점, 일본군 장교 숙소, 치안대, 중화민국 임시 대사관, 예식장으로 쓰임이 바뀌었고, 부산역사문화대전은 지금 내부 구성이 병원보다 요리점 봉래각 시절의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고 적는다.
언제 어떻게 지어졌을까?
국가유산청 등록 설명에 따르면 이 건물은 1927년 2월과 12월에 각각 지은 두 동을 하나로 합친 것이다. 최용해가 처음 개업한 시점은 자료마다 다르다. 부산시보 2003년 연재는 1922년 초량의 목조 건물에서 먼저 개업한 뒤 자기 재산과 일본 처가의 도움, 동양척식주식회사에서 빌린 돈으로 지금 건물을 지었다고 적었고, 2019년 부산시보 기사는 1921년 8월 백제의원으로 개업했다고 소개한다. 병원은 부산부립병원, 철도병원과 함께 부산의 3대 병원으로 불렸다. 1932년 최용해가 병원을 닫고 일본으로 떠나자 채권자였던 동양척식주식회사가 1933년 건물을 중국인 양모민에게 팔았고, 양모민은 중국 요리점 봉래각을 열었다. 1942년 봉래각이 문을 닫은 뒤에는 부산에 주둔한 일본군 아카쓰키 부대가 장교 숙소로 썼고, 광복 후에는 부산치안사령부, 1950년에는 중화민국 임시 대사관으로 쓰였다. 1953년 신세계 예식장이 되었다가 1972년 화재로 내부가 타면서 부산시 명령으로 5층을 철거했다. 원래 층수에 대해서도 5층 건물이었다는 설명과, 4층 건물 옆에 지상 6층 건물을 더 지었다는 설명이 함께 전한다. 2014년 12월 26일 국가등록문화재 제647호로 등록되었고, 2021년 문화유산 지정번호 제도가 폐지되면서 번호 없이 국가등록문화유산으로 관리된다. 현재 1층은 카페 브라운핸즈로 쓰인다.
누가 만들었을까?
건물을 설계한 사람의 이름은 부산역사문화대전과 국가유산청 설명 어디에도 나오지 않는다. 건축주 최용해는 지금의 강서구 명지 출신으로 일본 오카야마의학전문학교를 졸업한 의사이며, 부산시보 2003년 연재에 따르면 독일인과 일본인 의사를 초빙해 진료했다. 같은 연재는 그가 행려병자 시신으로 해골 표본을 만들어 병실에 둔 일이 소문으로 번져 환자가 끊기고 건축 부채 독촉까지 겹치자 1932년 39세에 가족과 함께 처가가 있는 일본으로 떠났다고 전하는데, 이는 향토 연재에 실린 이야기로 공문서로 확인된 내용은 아니다. 건물을 사들인 양모민의 봉래각은 1930년대 중반 초량의 봉래기생조합이 성업하던 시기에 한국인, 중국인, 일본인 손님이 드나드는 요리점으로 운영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공간 뜯어보기
대지는 반듯한 사각형이 아니라 마름모에 가까운 부정형이고 두 동을 합친 건물이라, 안에는 사각형과 마름모꼴 방이 섞여 있다. 벽돌 벽이 무게를 받는 조적조로 지었으며, 부산시보는 철근을 쓰지 않고 벽돌과 나무로만 지었다고 소개한다. 처음 지은 1~3층에 목조 계단과 장식, 목재 마감의 원형이 남아 있다는 점이 등록 사유로 적혀 있다. 외벽 창은 위아래로 여닫는 내리닫이창이고, 창의 위치는 안쪽의 불규칙한 방 배치가 겉에서 드러나지 않도록 가지런히 맞췄다. 남쪽 출입구 위에는 벽돌을 세워 엮은 아치를 두었고, 건물 꼭대기 부분에는 회색 화강암을 역사다리꼴로 다듬어 벽돌 속에 박았으며, 3층과 4층 창 사이에는 검붉은 벽돌로 이중 다이아몬드 무늬를 넣었다. 카페로 고치면서 1972년 화재로 그을린 골조와 벗겨진 페인트를 덮지 않고 드러내 두었기 때문에, 방문자는 마감재 없이 벽돌을 쌓은 방식과 천장의 건축 자재를 직접 볼 수 있다. 1920년대 사진에 보이는 원형 지붕은 지금 남아 있지 않으며, 부산 동구청은 2020년 이 지붕의 복원 고증 용역을 시작했다.
알고 보면 더 재밌는 이야기
한국인이 세운 민간 종합병원이 일본 회사의 채권 회수로 중국인 상인에게 넘어갔다. 이후 이 건물은 일본군 숙소, 광복 직후 치안대, 전쟁기 외교시설, 1950년대 예식장으로 용도가 계속 바뀌었다. 부산시보 2003년 연재는 공회당이나 학교를 빌려 치르던 신식 결혼식이 전문 예식장이 생기면서 이곳으로 몰렸다고 전해, 1950년대 부산 사람들의 생활 변화도 이 건물에서 읽을 수 있다.
동네 속 이 건물의 존재감
건물은 부산역에서 중앙대로를 건너 초량2동 주민센터 쪽으로 가는 골목 모서리에 있고, 초량 이바구길의 출발점으로 안내된다. 바로 옆 대형마트 자리는 함경도 명태를 배로 싣고 와 보관하던 남선창고 터로, 2009년 창고가 철거되고 붉은 벽돌 담장만 남았다. 초량전통시장, 일본식 가옥 거리, 차이나타운 거리가 걸어서 닿는 거리에 있다.
현장에서 꼭 볼 꿀포인트
- 남쪽 출입구 위의 벽돌 아치를 보고, 벽돌을 세워 엮은 방식이 일반 벽면 쌓기와 어떻게 다른지 비교한다.
- 건물 밖에서 3층과 4층 창 사이 검붉은 벽돌의 이중 다이아몬드 무늬와 꼭대기에 박힌 역사다리꼴 화강암을 찾는다.
- 실내에서 1972년 화재로 그을린 골조와 목조 계단을 확인하고, 방마다 평면이 사각형인지 마름모꼴인지 살펴본다.
- 1층에서 바닥이 약간 낮은 넓은 방을 찾아 봉래각 주방이 있던 자리로 소개되는 공간과 거리 쪽 직사각형 창을 본다.
- 건물 옆 남선창고 터에 남은 붉은 벽돌 담장을 찾아 백제병원 외벽 벽돌과 색과 크기를 비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