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건축 · 1906년 준공
조선 왕실 영건도감 / 사바틴 (정관헌)
조선 후기 다포식 정전 및 한양 절충식 서양 누각
대한제국 고종 황제의 정전. 1906년 단층으로 다시 지은 건물과 어좌 위 닫집의 쌍룡, 어좌 뒤 일월오봉병.
- 건축가
- 조선 왕실 영건도감 / 사바틴 (정관헌)
- 준공
- 1906년
- 양식
- 조선 후기 다포식 정전 및 한양 절충식 서양 누각
- 주소
- 서울특별시 중구 세종대로 99 길찾기
먼저 알고 갈 이야기
지금 덕수궁 한가운데 서 있는 중화전은 1902년에 지은 건물이 아니다. 대한제국의 새 정전으로 2층 지붕을 올려 지었던 건물이 1904년 불타자, 1906년 지붕을 한 겹으로 줄여 다시 지은 것이 현재의 중화전이다.
언제 어떻게 지어졌을까?
덕수궁의 옛 이름은 경운궁이다. 고종이 이곳에 머물며 대한제국을 선포한 뒤에도 한동안은 기존 건물인 즉조당을 정전(나라의 공식 의식을 치르는 중심 건물)으로 썼으나, 규모가 작아 황제국의 의례를 치르기에 부족했다. 이에 1902년(광무 6년) 즉조당 앞쪽에 새 정전을 지어 중화전이라 불렀고, 이 건물은 지붕이 두 겹인 중층 건물이었다.
1904년 경운궁에 큰 화재가 나 중화전도 불에 탔고, 1906년 다시 지었을 때는 지붕이 한 겹인 단층 건물이 되었다. 국가유산청 설명에 따르면 중화전과 정문인 중화문은 모두 1906년에 다시 지은 건물이다. 두 건물은 1985년 1월 8일 보물로 지정되었고, 국가유산청은 2010년 5월부터 토요일에 인원을 제한해 중화전 내부를 공개하기 시작했다.
누가 만들었을까?
중화전을 짓게 한 사람은 대한제국 황제 고종이다. 중화전은 황제가 신하들의 하례(새해나 경축일에 올리는 공식 인사)를 받고 국가 행사를 치르는 곳이었다.
같은 궁 안의 정관헌은 1900년 무렵 지어진 건물로, 정부 기록화 조사 보고서는 설계자를 러시아 출신 건축가 사바틴으로 다룬다. 중화전을 짓거나 다시 지은 목수와 감독관의 이름은 알려져 있지 않다.
공간 뜯어보기
중화전은 앞면 5칸, 옆면 4칸 규모이며, 옆에서 보면 지붕 윤곽이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을 얹었다. 처마를 받치는 나무 짜임(공포)을 기둥 위뿐 아니라 기둥과 기둥 사이에도 둔 다포 양식이다. 국가유산청은 밖으로 뻗은 공포 부재가 가늘고 곡선이 큰 점을 조선 후기 수법의 특징으로 설명한다.
건물 안쪽 어좌(임금이 앉는 자리) 위에는 작은 지붕 모양의 장식 구조물인 닫집을 달았고, 그 안에 용 한 쌍을 새겼다. 국가유산청 보도자료는 닫집의 쌍룡과 천장 문양이 같은 용 무늬로 맞춰져 있으며, 이것이 덕수궁이 황제의 궁궐이었음을 보여준다고 설명한다. 어좌 뒤에는 해와 달, 다섯 봉우리를 그린 일월오봉병이 놓여 있다.
정문인 중화문은 앞면 3칸, 옆면 2칸의 팔작지붕 다포 건물이다. 원래 문 좌우로 긴 복도 건물(행각)이 이어져 중화전 마당을 둘러쌌으나, 지금은 문 동쪽에 일부 흔적만 남아 마당이 사방으로 열려 있다. 그래서 오늘날 방문객은 원래의 닫힌 의례 공간보다 훨씬 트인 마당에서 중화전을 보게 된다.
중화전 뒤편 언덕의 정관헌은 전통 목조 전각과 전혀 다른 방식으로 지어졌다. 서울시 자료에 따르면 돌 기단 위에 회색과 붉은 벽돌 벽을 세우고 초록색 지붕을 얹었으며, 발코니 쪽 기둥과 난간을 장식적으로 꾸몄다. 정부 보고서는 이 건물을 여러 양식을 섞은 절충주의 양식으로 분류한다.
알고 보면 더 재밌는 이야기
중화전은 조선의 왕궁이 황제국의 궁궐로 격을 바꾸려 한 시도를 보여준다. 닫집과 천장에 용을 새긴 것은 황제의 권위를 건물 장식으로 드러내려는 선택이었다. 그러나 두 겹 지붕으로 지은 정전이 불과 4년 만에 한 겹 지붕으로 다시 지어졌다는 사실은, 러일전쟁과 1905년 을사늑약으로 이어진 시기 대한제국의 처지와 겹쳐 해석되기도 한다.
같은 궁 안에 전통 다포 정전과 벽돌·서양식 기둥의 정관헌이 함께 있다는 점은 1900년 전후 궁궐이 전통 의례와 외국식 생활 공간을 동시에 필요로 했음을 보여준다. 서울시 자료는 고종이 정관헌에서 커피를 마시거나 외교 사절을 맞은 것으로 전한다.
동네 속 이 건물의 존재감
덕수궁은 세종대로를 사이에 두고 서울광장, 서울도서관과 마주 보며, 정문 대한문으로 들어가 중화문을 지나면 중화전 마당에 닿는다. 궁 서쪽과 남쪽은 옛 외국 공사관과 선교 시설이 모였던 정동으로 이어져, 석조전과 정동길 근대 건물을 같은 동선으로 볼 수 있다.
현장에서 꼭 볼 꿀포인트
- 중화전 정면 문이 열려 있을 때 어좌 위 닫집 안쪽을 올려다보고, 쌍룡이 새겨진 위치를 찾아본다.
- 중화문 동쪽 끝에서 옛 행각이 이어졌던 흔적을 찾아보고, 행각이 마당을 둘러쌌을 때의 크기를 가늠해 본다.
- 처마 밑으로 가서 기둥 사이에도 공포가 짜여 있는지, 공포 부재가 얼마나 가늘게 뻗었는지 확인한다.
- 중화전 뒤편 즉조당 쪽으로 돌아가 1902년 이전 정전으로 쓰인 건물과 중화전의 규모 차이를 비교한다.
- 정관헌으로 올라가 벽돌 벽과 장식 기둥, 난간의 문양을 중화전의 목조 공포와 나란히 떠올려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