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건축 · 1937년 준공
미상 (일본군이 제주도민을 강제동원해 건설)
일제 군사 토목 아치형 콘크리트 격납고 및 벙커
태평양전쟁 당시 일제가 제주도민을 강제동원해 건설한 콘크리트 비행기 격납고. 흙을 덮어 들판의 작은 동산처럼 위장했다.
- 건축가
- 미상 (일본군이 제주도민을 강제동원해 건설)
- 준공
- 1937년
- 양식
- 일제 군사 토목 아치형 콘크리트 격납고 및 벙커
- 주소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대정읍 상모리 길찾기
먼저 알고 갈 이야기
알뜨르 들판의 낮은 풀 언덕 가운데 입구가 뚫린 것들이 비행기 격납고다. 지붕 위에 흙을 덮어 하늘에서 구릉처럼 보이도록 위장한 콘크리트 구조물이어서, 멀리서는 건물로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 이 시설의 목적을 그대로 설명한다.
언제 어떻게 지어졌을까?
알뜨르비행장은 일본군이 대정읍 상모리 들판에 만든 군용 비행장이다. 착공 시기는 자료마다 다르다. 서귀포시 건축문화기행 자료는 1926년부터 짓기 시작해 10년 만에 20만 평 규모로 완성했다고 적고, 국가유산청의 지하벙커 설명은 중국 본토 공략을 위해 1935년 무렵 594,000㎡ 규모로 조성했다고 적는다. 두 자료 모두 1945년 무렵 비행장을 크게 넓혔다는 점은 같다(서귀포시 자료 80만 평, 국가유산청 1,320,000㎡). 활주로는 길이 1,400m, 너비 70m로 잔디를 깔았다고 한다.
격납고는 국가유산청 기록에 따르면 2차 대전 당시 일본군이 제주도민을 강제 동원해 건설한 전투기 격납고다. 당시 20기가 만들어져 19기가 원형대로 남고 1기는 잔해만 남았다. 건립 시기는 국가유산청 기록에 1937년으로 되어 있으나, 서귀포시 자료 본문은 1944년 일제가 설계하고 도민을 동원해 완성했다고 적어 서로 다르다. 서귀포시 자료는 이 격납고들이 태평양전쟁 막바지 미군의 상륙에 대비한 「결7호 작전」과 연결되며, 「아카톰보(빨간 잠자리)」라 불린 비행기를 숨기려 했지만 전투기 부족과 곧이은 항복으로 목적대로 쓰이지는 않았다고 설명한다.
격납고는 2002년 5월 31일 등록문화재 제39호로 등록되었고 현재 명칭은 국가등록문화유산 「남제주 비행기 격납고」다. 등록 기록의 수량란에는 10기(각 142.0~178.3㎡)가 적혀 있어 본문의 19기와 차이가 있다. 비행장 중심부의 지하벙커는 2006년 12월 4일 「제주 모슬포 알뜨르비행장 일제 지하벙커」(제312호)로 따로 등록되어 이 지도에서도 별도 건물로 표시한다. 소유자는 국방부, 관리자는 제주특별자치도이며, 활주로는 지금도 일반인이 안으로 들어갈 수 없다.
누가 만들었을까?
설계자는 알려져 있지 않다. 국가유산청과 서귀포시 자료는 일본군이 계획하고 제주도민을 강제로 동원해 건설했다고만 적고 있다. 한국전쟁 때에는 모슬포 일대에 육군 제1훈련소(강병대)가 들어서 이 지역이 다시 군사 시설의 중심이 되었다.
공간 뜯어보기
서귀포시 자료에 따르면 격납고는 모두 같은 규격의 철근콘크리트 구조물로 폭 18.7m, 높이 3.6m, 길이 11m이며, 지붕 두께는 0.6~1m다. 콘크리트 구조물 위에 흙을 덮어 위장했다. 높이를 낮게 하고 흙을 덮은 것은 폭격과 정찰에 드러나지 않게 하기 위해서였고, 그 결과 격납고는 들판의 작은 동산처럼 보인다. 입구 쪽에서 보아야 콘크리트 구조의 단면이 드러난다.
국가유산청은 인공 동굴 형태의 진지는 제주에 많이 있지만, 이처럼 지상 시설물을 한곳에 집중적으로 보여 주는 예는 이것이 유일하다고 평가한다. 여러 기가 간격을 두고 흩어져 있는 것은 한 번의 공격으로 여러 대가 함께 파괴되지 않도록 한 배치로 볼 수 있다.
알고 보면 더 재밌는 이야기
알뜨르의 격납고는 식민지 주민의 노동으로 식민지를 전쟁 기지로 만든 과정을 보여 준다. 국가유산청은 이 시설을 제주도를 일본군 출격 기지로 만들려 한 증거로 기록한다. 같은 들판 가까이에는 일제 탄약고 자리였던 섯알오름이 있는데, 서귀포시 자료는 광복 뒤 4·3 때 이곳에서 252명이 처형되었다고 적고 있다. 한 들판 가까이에 식민지 전쟁 동원과 해방 뒤 국가 폭력의 현장이 겹쳐 있어, 서귀포시는 이 일대를 역사·교육 답사 코스로 안내한다.
동네 속 이 건물의 존재감
알뜨르비행장은 대정읍 상모리, 송악산과 모슬포 사이의 평지에 있다. 격납고는 이 들판에 간격을 두고 흩어져 있고, 활주로 한가운데에 지하벙커가 따로 있다. 주변에는 섯알오름 일제 동굴진지(등록문화재 제310호)와 고사포진지(제316호), 송악산 외륜 일제 동굴진지(제317호), 1952년 육군 제1훈련소가 세운 강병대교회(제38호) 등 전쟁 관련 시설이 모여 있다. 서귀포시는 이들을 묶어 건축문화기행 1코스 「전쟁과 근대건축」으로 안내한다. 활주로 안으로는 들어갈 수 없고 관제탑 부근에서 바라볼 수 있다.
현장에서 꼭 볼 꿀포인트
- 들판의 풀 언덕 가운데 입구가 뚫린 격납고를 찾아, 입구 쪽에서 콘크리트 구조의 단면과 지붕 위에 덮인 흙의 두께를 본다.
- 여러 격납고가 서로 얼마나 떨어져 흩어져 있는지 한 지점에서 세어 본다.
- 섯알오름 쪽으로 이동해 폭파된 탄약고 자리와 희생자 추모비를 함께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