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 걷다
원폭돔

근대건축 · 1915년 준공

원폭돔

얀 레츠얼

근대 서양식 건축·기념건축

원폭 피해를 견디고 남은 근대 건축물로 평화와 기억의 상징이 되었다.

건축가
얀 레츠얼
준공
1915년
양식
근대 서양식 건축·기념건축
주소
1-10 Otemachi, Naka Ward, Hiroshima 길찾기

먼저 알고 갈 이야기

원폭돔은 1915년 히로시마현 물산진열관으로 세워진 건물로, 1945년 8월 6일 원자폭탄이 이 건물 가까운 상공에서 폭발했을 때 중앙의 돔 부분이 뼈대와 외벽 일부를 남기고 서 있었다. 설계는 체코인 건축가 얀 레츠얼이 했다. 1995년 국가 사적으로 지정되었고 1996년 12월 5일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었다. 위키백과 일본어판은 2025년 9월 18일 근대 유적으로는 처음으로 특별사적으로 지정되었다고도 적는다.

언제 어떻게 지어졌을까?

히로시마현 의회가 1910년 건설을 결정했고 1915년 4월 5일 준공, 8월 15일 개관했다. 시공은 무쿠다구미였다. 지역 특산품의 판로를 넓히려는 진열 시설로 계획되었다. 1921년 히로시마현립상품진열소로, 1933년 히로시마현 산업장려관으로 이름이 바뀌었으며 미술전과 박람회가 자주 열렸다. 일본어판 위키백과에 따르면 1919년 이곳에서 열린 전시회에서 독일인 제과 기술자 카를 유하임이 일본 최초로 바움쿠헨을 만들어 팔았다. 1944년 3월 31일 장려관 업무가 정지되어 내무성 관련 사무소와 통제조합 사무소로 쓰이던 중 피폭했다. 전후 1949년 히로시마평화기념도시건설법이 제정되었고, 1953년 소유권이 현에서 시로 넘어갔다. 1966년 시의회가 보존을 결의한 뒤 1967년 첫 보존공사가 끝났고, 이후 1989년 두 번째, 2002년 세 번째 보존공사가 이어졌다. 1989년 이후에는 3년에 한 번 건전도 조사를 한다.

누가 만들었을까?

얀 레츠얼(1880~1925)은 보헤미아 나호트 출신으로 프라하 응용미술대학에서 얀 코테라에게 배웠다. 일본어판 위키백과에 따르면 1907년 요코하마의 게오르크 데 랄란데 사무소에서 일하려고 일본에 왔다. 고베 오리엔탈 호텔 공동설계, 도쿄 성심여학원, 마쓰시마 파크 호텔 등이 일본에서 한 작업으로 소개된다. 1923년 관동대지진으로 큰 손실을 입은 뒤 1925년 프라하로 돌아가 그해 세상을 떠났다. 히로시마현의 건물 안내는 물산진열관의 외벽 기하학 무늬에서 세제션(빈 분리파)의 영향을 읽고, 유럽 역사주의 건축과 다른 당시의 전위적 디자인이라고 평한다.

공간 뜯어보기

일본어판 위키백과의 「히로시마현 산업장려관」 항목은 철골이 들어간 벽돌·석조에 모르타르 마감으로 설명하고, 일부는 철근콘크리트라고 다른 서술도 있어 자료마다 표현이 다르다. 지상 3층, 지하 1층이며 돔 끝까지의 높이는 약 25m다. 돔은 정원(正圓)이 아닌 타원형이고, 돔 지붕은 구리판, 나머지 지붕은 슬레이트였다고 한다. 양식은 신바로크에 세제션풍 장식을 더한 것으로 설명된다. 히로시마현 안내는 정면을 강 쪽으로 둔 배치 계획도 짚는다. 피폭 때 열선과 폭풍으로 3층 본체는 1초 안에 거의 무너졌지만 중앙 돔은 전파를 면했다. 위키백과는 그 이유로 폭풍이 거의 바로 위에서 내리쳤다는 점, 창이 많아 폭풍이 빠져나갔다는 점, 돔 지붕이 구리판이라 열선에 녹아 폭풍이 통과했다는 점을 든다. 돔 철골이 서북서 쪽으로 기운 모습은 지금도 눈으로 확인된다고 한다.

알고 보면 더 재밌는 이야기

전후 이 폐허를 철거하자는 의견도 많았다. 1948년 신문은 상처를 세계에 내보이며 동정을 사려는 태도를 이제 버려야 한다는 식으로 썼고, 1960년 히로시마신문 조사에서는 피폭자의 3분의 1이 철거를 원했다고 위키백과가 소개한다. 히로시마시 당국은 처음에 보존 비용을 이유로 소극적이었다. 1960년 급성 백혈병으로 숨진 16세 소녀 가지야마 히로코는 1959년 8월 6일 일기에 이 건물이 원폭을 세상에 계속 알려 줄 것인지 물었고, 위키백과는 이 일기가 논의의 흐름을 바꾸었다고 적는다. 1966년 7월 11일 시의회가 보존을 결의했고 공사 비용은 전국 모금으로 충당되었다. 보존 원칙은 가능한 한 파괴된 당시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라, 일반 문화재의 복원과 달리 철골 보강과 수지 주입으로 형태를 붙들고 위험한 부분만 떼어 낸다. 세계유산 등재는 1992년 이후 시의회와 시민의 청원이 이어진 끝에, 1995년 국가 사적 지정이 이루어지면서 길이 열렸다.

동네 속 이 건물의 존재감

소재지는 히로시마시 나카구 오테마치 1초메 10번지로, 아이오이바시 동쪽 끝이다. 서쪽에서 남쪽으로 모토야스강이 흐르고 강 건너가 평화기념공원이다. 1955년 완공된 단게 겐조 설계의 평화기념공원은 돔을 북쪽 끝에 두고 위령비와 평화기념자료관이 남북 일직선으로 놓이게 짜여, 돔이 눈에 띄게 하려는 의도가 있었다고 한다. 북쪽으로는 아이오이도리 건너 히로시마상공회의소 빌딩과 옛 시민구장 터가 있다. 2006년에는 완충지대 바로 바깥에 고층 맨션 계획이 알려져 경관 논란이 일었다.

현장에서 꼭 볼 꿀포인트

  1. 1남쪽 모토야스강 건너 평화기념공원 쪽에서 돔의 뼈대만 남은 윤곽과 구리판이 없어진 돔 골조를 함께 본다.
  2. 2돔 철골이 서북서 쪽으로 기운 모습을 강 건너에서 확인하고, 폭심 방향인 동남동을 지도에서 대조한다.
  3. 3안내문에서 준공 당시 물산진열관과 1933년 이후 산업장려관이라는 이름의 차이를 확인한다.
  4. 4평화기념공원 위령비에서 돔이 보이는 남북 축선을 따라 걸으며 단게 겐조가 돔을 북쪽 기점으로 둔 의도를 살핀다.
  5. 5울타리 바깥에서 벽돌과 보강재의 상태를 보고, 원형을 유지하는 보존 방식이 일반 복원과 어떻게 다른지 생각한다.

참고한 공식 출처

원폭돔 — 위키백과 일본어판 (건립·피폭·보존 경위)広島県産業奨励館 — 위키백과 일본어판 (건물 구조·규모)ヤン・レッツェル — 위키백과 일본어판 (설계자 약력)ひろしまたてものがたり 原爆ドーム(旧広島県産業奨励館)(히로시마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