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건축 · 1957년 준공
단게 겐조
전후 모더니즘·기업 사옥
염색가공업체 쓰야킨고교의 본사로 1957년 지어 지금은 공민관인 단게 겐조의 건물이다.
- 건축가
- 단게 겐조
- 준공
- 1957년
- 양식
- 전후 모더니즘·기업 사옥
- 주소
- 11-1 Minamikutan, Oshinnakajima, Ichinomiya, Aichi 길찾기
먼저 알고 갈 이야기
이 건물의 이름은 기념관이 아니라 스미 회관(墨会館, 스미카이칸)이다. 아이치현 이치노미야시에 있고 아이치현에 남은 유일한 단게 겐조 작품이라고 알려져 있다. 염색가공업체 쓰야킨고교(艶金興業)의 본사로 1957년 지어졌고, 지금은 시가 운영하는 공민관이다.
언제 어떻게 지어졌을까?
이치노미야시 오니시 지구는 섬유 산업이 발달한 곳이다. 위키백과에 따르면 1889년 스미 우키치가 쓰야(艶屋)를 창업했고 1924년 쓰야킨고교 주식회사가 됐다. 1952년 3대 사장 스미 도시오가 도쿄대 공학부 건축학과 조교수였던 단게 겐조를 여러 차례 찾아가 본사 설계를 의뢰했다. 1954년 단게가 캘리포니아대학 초빙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설계가 멈췄다가, 1955년 스미가 도쿄 출장 중 특급열차에서 우연히 단게를 만나 작업이 재개됐고 1957년 준공했다.
문화청 국가지정문화재 등 데이터베이스는 2008년 7월 8일(헤이세이 20년) 등록유형문화재로 등록했다고 적는다. 위키백과 본문은 같은 날짜에 「2008년(헤이세이 22년)」을 병기해 연호가 어긋나며, 문화청 기록을 따랐다. 쓰야킨고교가 섬유 사업에서 철수하면서 2010년 12월 건물이 이치노미야시에 양도됐다. 소신나카지마 지구에 공민관이 없어 시가 개수·내진 보강을 거쳐 2014년 11월 1일 「오니시 생애학습센터 스미 회관·소신나카지마 공민관」으로 개관했다.
누가 만들었을까?
단게 겐조는 이 건물을 지을 당시 도쿄대 조교수였다. 책상과 의자 같은 가구도 단게가 직접 설계했다고 위키백과가 적는다. 의뢰인 스미 도시오는 1952년 단게를 여러 차례 찾아가 설계를 청했고, 1955년의 열차 만남 일화가 위키백과에 실려 있다.
공간 뜯어보기
문화청 등록 정보는 철근콘크리트조 단층 일부 2층으로 기술한다. 사다리꼴 부지 북쪽 변에 2층 사무동, 남쪽 절반에 단층 홀동을 두고 현관 차량 진입부(車寄せ)로 잇는다. 대들보는 더블 빔이고 노출콘크리트로 마감했다. 1층 외벽은 구조체가 아니며 위쪽에 슬릿을 내어 채광한다. 시 홈페이지에 따르면 기둥과 벽에는 거푸집 나뭇결과 옹이가 남아 있다.
스미 회관 사이트는 이곳이 모직물 공장 지대여서 소음 대책으로 건물 전체를 벽으로 둘렀다고 설명한다. 두 동 사이의 중앙은 기둥만 선 필로티이고 테라코타 벽으로 채광과 통풍을 한다. 현관 로비는 2층 전체가 유리창인 보이드이며 벽에는 시가라키야키 타일을 붙였다. 두 건물 사이에는 잔디 중정이 있다. 면적 수치는 문화청 등록(건축면적 2,089㎡)과 시 자료(2,209㎡ 등)가 서로 달라 여기서는 확정하지 않는다.
알고 보면 더 재밌는 이야기
쓰야킨고교 관련 자료는 콘크리트를 노출한 닫힌 외관에 비해 내부 공간이 개방적이라는 점을 이 건물의 특징으로 든다. 기업 본사였던 건물이 회사의 섬유 사업 철수 뒤 시로 넘어가 공민관이 됐다. 문화청은 등록 기준을 「조형의 규범이 되는 것」으로 분류했다.
동네 속 이 건물의 존재감
주소는 아이치현 이치노미야시 소신나카지마 아자 미나미쿠탄 11-1이다. 이치노미야시 오니시 지구의 모직물 산업 지대 안에 있고, 건물 벽이 공장 소음을 막기 위한 것이라는 설명이 이 위치와 이어진다. 공민관으로 쓰므로 이용 가능 시간과 건물 견학 방법은 스미 회관 사이트의 「Web으로 건물 견학」과 시설 안내에서 확인할 수 있다.
현장에서 꼭 볼 꿀포인트
- 북쪽의 2층 사무동과 남쪽의 단층 홀동이 현관 차량 진입부에서 어떻게 이어지는지 걸어서 확인한다.
- 노출콘크리트 기둥과 벽에서 거푸집의 나뭇결과 옹이 자국을 찾는다.
- 중앙 필로티의 테라코타 벽으로 빛과 바람이 들어오는 방식을 보고, 잔디 중정 쪽 전면 유리와 비교한다.
- 현관 로비 벽의 시가라키야키 타일과 2층 전체 유리창이 만드는 보이드를 올려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