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건축 · 1900년 준공
일본 영사관 토목기사
19세기 르네상스풍 적벽돌 외교 공관
유달산 자락 아래 붉은 벽돌과 백색 석재로 지은 르네상스 양식의 개항장 영사관 건물.
- 건축가
- 일본 영사관 토목기사
- 준공
- 1900년
- 양식
- 19세기 르네상스풍 적벽돌 외교 공관
- 주소
- 전라남도 목포시 영산로29번길 6 길찾기
먼저 알고 갈 이야기
1900년 12월 유달산 기슭에 준공된 이 붉은 벽돌 건물은 일본영사관으로 쓰인 기간이 10년이 채 되지 않는다. 그 뒤 부청사, 시립도서관, 문화원, 역사관으로 차례로 쓰였기 때문에, 한 건물에서 목포 행정과 문화시설의 한 세기 변화를 따라가 볼 수 있다.
언제 어떻게 지어졌을까?
목포는 1897년 개항했고, 일본은 개항 무렵부터 목포에 영사관을 두었다. 현재의 건물은 1900년 1월 공사를 시작해 같은 해 12월(광무 4년) 준공되었으며, 1907년까지 일본영사관으로 쓰였다. 이후 1914년부터 목포부청사로 쓰였고, 해방 후에는 1974년부터 목포시립도서관, 1990년부터 2009년까지 목포문화원이 들어섰다. 1981년 9월 25일 사적으로 지정되었고, 2014년부터 목포근대역사관(본관)으로 쓰이고 있다. 국가유산포털에 등재된 지정 면적은 6,575㎡이며 소유와 관리는 목포시가 맡고 있다.
누가 만들었을까?
설계자와 시공자는 현재 확인되는 자료에서 밝혀져 있지 않다. 건축주는 대한제국에 영사관을 두었던 일본 정부였고, 1914년 이후에는 식민지 지방행정기관인 목포부가 이 건물을 청사로 썼다. 해방 뒤에는 목포시가 도서관과 문화원 같은 시민 시설로 용도를 바꾸었다.
공간 뜯어보기
건물은 붉은 벽돌로 쌓은 2층 건물로, 평면은 긴 네모꼴이고 중앙에 바깥으로 튀어나온 현관을 두었다. 지붕은 네 면이 모두 경사진 우진각지붕이다. 가운데 현관을 강조하는 구성은 서양 르네상스 양식을 따른 것으로 설명되며, 외교 공관이 정면에서 격식을 갖춘 인상을 주도록 하는 방식이다. 내부 바닥은 나무로 깔았고, 대리석으로 꾸민 벽난로가 남아 있다. 벽난로와 목재 바닥은 당시 서양식 공관의 생활 방식을 들여온 것으로, 방마다 난방을 따로 하는 구조였음을 보여준다. 건물은 해안에서 약 1㎞ 떨어진 유달산 기슭에 놓여 있어, 아래쪽 시가지보다 높은 자리에서 앞마당을 내려다보게 된다.
알고 보면 더 재밌는 이야기
개항장 영사관은 자국 거류민을 보호하고 무역을 관리하는 기관이었고, 1900년의 목포에서는 일본 세력이 커지는 과정을 보여주는 건물이었다. 같은 건물이 1914년 식민 행정의 청사가 되었다가 해방 뒤 도서관과 문화원으로 바뀌었다. 현재 역사관으로서 목포의 근대사를 전시한다는 점에서, 건물은 전시 공간이면서 동시에 전시의 대상이다.
동네 속 이 건물의 존재감
건물은 개항 후 조성된 목포 원도심의 뒤편, 유달산 쪽 높은 땅(영산로29번길 6)에 자리 잡고 있다. 같은 원도심 안에 구 호남은행 목포지점 등 근대 건물이 남아 있어 걸어서 함께 볼 수 있다.
현장에서 꼭 볼 꿀포인트
- 정면 중앙의 튀어나온 현관을 기준으로 좌우 창의 개수와 배치를 세어 본다.
- 붉은 벽돌 벽면과 창 둘레에 쓰인 다른 재료의 색 차이를 가까이서 비교한다.
- 내부에서 대리석으로 마감한 벽난로와 목재 바닥이 어느 방에 남아 있는지 찾아본다.
- 앞마당 끝에서 아래 시가지 방향을 내려다보고, 영사관이 왜 이 높이에 자리 잡았는지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