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 걷다
국립부여박물관 (구 본관)

현대건축 · 1967년 준공

국립부여박물관 (구 본관)

김수근 (Kim Swoo-geun)

노출콘크리트 조형 브루탈리즘 & 전통 지붕 현대화

1967년 공사 중 신사를 닮았다는 보도로 전통 논쟁이 벌어진 김수근 설계의 옛 국립부여박물관.

건축가
김수근 (Kim Swoo-geun)
준공
1967년
양식
노출콘크리트 조형 브루탈리즘 & 전통 지붕 현대화
주소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부소로 15 (관북리 28-4, 부소산성 입구 앞) 길찾기

먼저 알고 갈 이야기

부여 관북리 백제 왕궁터 안에 서 있는 이 작은 콘크리트 건물은 1967년 공사 도중 「일본 신사를 닮았다」는 신문 보도가 나오면서 문교부 장관이 철거까지 거론했던 옛 국립부여박물관이다. 논쟁을 겪은 김수근이 이후 한국 건축의 공간을 다시 공부하게 되었다는 점에서, 한국 현대건축의 전통 논쟁이 시작된 현장으로 읽힌다.

언제 어떻게 지어졌을까?

박물관 건립은 1965년 추진되었고 건축면적은 707㎡로 크지 않다. 1967년 8월 19일 동아일보가 「부여 박물관 건축양식에 말썽, 일본 신사와 같다」는 제목으로 정문이 신사 입구의 문인 도리이를, 지붕 끝 모양이 신사 지붕의 지기(지붕 끝에서 X자로 교차하는 부재)를 닮았다고 보도하면서 논쟁이 시작되었다. 문홍주 문교부 장관은 일본식이면 철거하겠다고 밝혔고, 14명의 심사위원이 공사 현장을 답사한 뒤 신사가 아니라는 결론을 냈다. 지붕을 일부 고친 뒤 건물이 완공되었고, 정문은 등나무로 가려졌다가 뒤에 철거되었다. 박물관으로 쓰이기 시작한 해는 자료에 따라 1970년 또는 1971년으로 다르다. 1993년 국립부여박물관이 새 건물로 옮긴 뒤 이 건물은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와 사비도성 가상체험관 등으로 용도가 계속 바뀌었고, 2005년에는 백제 유적 발굴을 위해 철거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2025년 1월 관리 주체가 부여군에서 국가유산청 산하 한국전통문화대학교로 넘어갔으며, 공간종합건축사사무소와 한창건축사사무소 팀의 리모델링 설계안이 선정되어 2027년 하반기 대학 교외 박물관으로 다시 여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누가 만들었을까?

설계자 김수근(1931~1986)은 일본 도쿄대에서 공부한 경력 때문에 당시 왜색 논쟁에서 더 거센 비판을 받았다. 중앙일보 기사는 그가 이 사건 이후 한국 건축과 한국성을 집중적으로 공부했고, 그 결과가 서울 원서동 공간 사옥(1971~1977)으로 이어졌다고 설명한다. 2025년 리모델링 설계를 맡은 공간종합건축사사무소는 김수근 건축연구소의 후신이어서, 반세기 만에 같은 계보의 사무소가 이 건물을 다시 고치게 되었다.

공간 뜯어보기

건물은 3층 규모이지만 밖에서 보면 건물 전체가 하나의 삼각 지붕처럼 보인다. 중앙일보 기사는 이 모습을 아랫부분이 잘린 채 지붕만 남은 것 같기도, 원시적인 오두막을 콘크리트로 만든 것 같기도 하다고 묘사한다. 벽을 세우고 지붕을 얹는 일반적인 구성 대신 지붕 형태 자체를 건물의 몸체로 삼았기 때문에 규모에 비해 형태가 강하게 드러나고, 바로 이 지붕 끝 처리가 신사 건축과 비교되는 빌미가 되었다. 내부에는 천창(지붕에 낸 창)이 뚫린 화장실처럼 위에서 빛을 들이는 곳이 있다. 1990년대 말 내부에 2층 바닥이 증축되면서 원래의 높은 전시 공간이 나뉘었고, 계단부도 철골 슬래브로 개보수되었다. 새 리모델링안은 외관을 바꾸지 않고 증축된 2층 바닥을 철거해 건축 당시의 전시용 대공간을 원형에 가깝게 되살리고, 지하 몰입형 전시실로 들어가는 동선을 여러 갈래로 나누는 방향이다.

알고 보면 더 재밌는 이야기

논쟁이 크게 번진 데에는 건물 형태만이 아니라 땅의 역사가 작용했다. 일제는 부소산 아래 관북리 일대를 고대 일본과 백제의 관계를 강조하는 장소로 삼아 신사를 짓고 총독부 부여박물관을 세웠으며 부여신궁 건설까지 계획했다. 그런 곳에 신사를 닮았다는 국립박물관이 들어서자 반발이 더 거셌다. 같은 시기 정부는 국립종합박물관(현 국립민속박물관) 설계 공모에서 문화재의 외형을 그대로 나타내라는 조건을 걸었는데, 전통을 형태로 복제하라는 요구와 전통을 재해석하려는 시도가 1960년대에 함께 부딪친 사례로 이 건물이 자주 거론된다.

동네 속 이 건물의 존재감

건물은 사적 부여 관북리 유적 안, 부소산 아래에 있다. 백제 유적 발굴이 본격화되기 전에는 주변에 건물이 빼곡했지만 발굴 과정에서 대부분 철거되고 이 박물관 건물만 남았다. 현재의 국립부여박물관은 1993년 금성로의 새 건물로 옮겼으므로, 옛 박물관과 현 박물관은 서로 다른 장소에서 따로 찾아가야 한다.

현장에서 꼭 볼 꿀포인트

  1. 1건물 정면에서 지붕 윤곽을 보고 1967년 신사 지붕의 지기와 비교되었던 지붕 끝 처리가 어느 부분인지 찾아본다.
  2. 2도리이를 닮았다는 비판을 받은 정문이 있던 진입부를 확인한다. 정문은 철거되어 현재 남아 있지 않다.
  3. 3건물 둘레의 관북리 유적 발굴지를 함께 걸으며 주변 건물이 모두 철거되고 이 건물만 남은 배치를 확인한다.
  4. 4리모델링 기간에는 내부 관람이 어려우므로 외관 위주로 보고, 금성로의 현 국립부여박물관과 규모와 지붕 형태를 비교한다.

참고한 공식 출처

중앙일보 - 잘나가던 김수근 굴욕 안겼다…부여를 흔든 왜색 논쟁 건물중앙일보 - 김수근 설계 구 부여박물관, 후계자 공간건축이 리모델링 맡는다C3코리아 - 김수근 구 부여박물관, 한국전통문화대 박물관으로 재탄생한다아틀라스뉴스 - 옛 부여박물관, 김수근 설계가치 회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