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 걷다
서대문형무소 역사관 (구 서대문형무소)

근대건축 · 1908년 준공

서대문형무소 역사관 (구 서대문형무소)

설계자 미확인 (일본인 설계, 국가유산포털)

근대 방사형(파놉티콘형) 조적조 교정 시설

1908년 경성감옥으로 문을 열어 1987년까지 쓰인 감옥으로, 남은 옥사와 사형장이 사적이다.

건축가
설계자 미확인 (일본인 설계, 국가유산포털)
준공
1908년
양식
근대 방사형(파놉티콘형) 조적조 교정 시설
주소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통일로 251 길찾기

먼저 알고 갈 이야기

서대문형무소는 1908년 10월에 문을 열어 1987년 11월까지 80년 동안 감옥으로 쓰인 시설이다. 옥사 대부분은 철거되었고, 남은 붉은 벽돌 옥사와 사형장, 담장 일부가 사적으로 지정되어 서대문형무소역사관이 되었다.

언제 어떻게 지어졌을까?

국가유산포털은 이 감옥을 1907년 인왕산 기슭에 일본인이 설계해 세운 근대식 감옥으로 설명하고, 역사관은 1908년 10월 개소로 적는다. 처음에는 500여 명을 수용하는 560여 평 목조건물이었고 이름은 경성감옥이었다. 이후 1912년 서대문감옥, 1923년 서대문형무소, 1945년 서울형무소, 1961년 서울교도소, 1967년 서울구치소로 이름이 바뀌었다. 1944년에는 2,890명이 수용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1987년 11월 서울구치소가 경기도 의왕시로 옮겨 가면서 나머지 시설은 철거되고 일부만 남았다. 남긴 건물의 범위는 안내판마다 조금 다르다. 종합안내판은 보안과 청사, 제9~12옥사, 공작사, 한센병사, 사형장을 들고, 권역안내판은 제9~13옥사, 나병사, 사형장을 든다. 1988년 2월 27일 사적으로 지정되었고, 1992년부터 서대문독립공원이라는 이름으로 공원이 조성되었으며, 1998년 11월 5일 서대문형무소역사관으로 개관했다.

누가 만들었을까?

설계자는 일본인이라는 것 외에 특정되지 않는다. 국가유산포털은 「일본인이 설계하여 건립」이라고만 적는다. 이곳에 수감된 사람으로 국가유산포털 설명은 김구, 강우규, 유관순을 든다. 역사관 안내판에는 1932년 서대문형무소에 들어온 안창호에게 김정련이 감방 벽을 두드려 한글 자음과 모음을 조합하는 타벽통보법을 알려 주다가 간수에게 들킬 뻔했다는 일화가 실려 있다.

공간 뜯어보기

옥사는 붉은 벽돌로 지었고, 중앙 간수소에서 여러 옥사를 한눈에 감시하는 원형 감옥, 곧 파놉티콘 구조를 따랐다. 중앙사는 1920년대 중반에 지은 2층 건물로 제10·11·12옥사와 이어지며, 1층은 간수의 사무 공간이고 2층은 수감자를 모아 교육하던 강당이었다. 제9옥사는 1920년대에 지은 2층 옥사로 중앙 간수소와 연결되지 않은 독립 건물이며, 사상범을 따로 감시하던 곳으로 설명된다. 외벽에는 한국전쟁 때 생긴 총탄 자국이 남아 있다. 운동장인 격벽장은 부채꼴 모양으로, 가운데 높은 감시대에서 수감자를 통제하는 구조였고 2011년에 원위치에서 약 20m 떨어진 곳에 복원되었다. 보안과 청사는 1923년에 지상 2층, 지하 1층으로 지었다. 정면 지붕을 높게 세워 위압감을 주었고, 1959년에 양옆을 2층으로 높이면서 흰 타일을 붙였다가 2010년에 타일을 떼어 내 복원했다. 제12옥사의 징벌방은 2.4㎡ 넓이로 빛이 들지 않아 먹방이라 불렸다. 사형장은 1916년경 지은 것으로 추정되는 지상 1층, 지하 1층의 일본식 목조건물로, 5m 높이의 담이 둘러싸고 있다.

알고 보면 더 재밌는 이야기

이곳은 시기에 따라 다른 사람들을 가둔 곳이다. 국가유산포털 설명은 일제강점기에는 독립운동가와 애국시민, 학생이 투옥되었고, 광복 뒤에는 반민족행위자와 친일 세력이, 이후 4·19와 5·16, 군사정권 시기에는 시국사범이 수감되었다고 적는다. 역사관은 재소자의 노동력을 동원한 공장에서 1930년대 후반 이후 군수물품도 만들었다고 설명한다. 여옥사 지하에 유관순이 갇혔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왔지만 역사관은 그 근거가 없다고 밝히고 있다. 역사관 해설은 확인된 사실과 전해 오는 이야기를 이렇게 구분해 적는다.

동네 속 이 건물의 존재감

서대문형무소는 통일로 251의 서대문독립공원 안에 있고, 사적 지정 면적은 41,312㎡다. 소유는 서울특별시, 관리는 서대문구청이다. 1923년에는 형무소 주변 전체를 높이 4m의 벽돌담으로 둘렀는데 원래 길이는 1,161m였고, 지금은 앞면 80m와 뒷면 200m가 보존되어 있다. 높이 10m의 망루는 원래 6개였고 현재는 정문과 뒤쪽 담장에 2개가 남아 있다. 사형 집행 뒤 시신을 밖으로 내보내던 통로는 원래 약 200m였다고 전해지며, 1992년 공원을 만들 때 발굴해 40m를 복원했다.

현장에서 꼭 볼 꿀포인트

  1. 1중앙사 1층에서 제10·11·12옥사로 이어지는 복도의 방향을 확인하고, 간수 한 자리에서 옥사가 얼마나 보이는지 가늠한다.
  2. 2격벽장의 부채꼴 칸막이와 가운데 감시대를 보고, 격벽이 수감자끼리의 대화와 도주를 막던 구조임을 확인한다.
  3. 3제12옥사의 징벌방 안을 들여다보며 2.4㎡라는 넓이와 빛이 차단되는 구조를 확인한다.
  4. 4철거된 옥사 터에 붉은 벽돌로 표시한 자리에서 벽돌 중앙에 새겨진 「京」 자를 찾는다. 마포 공덕동 경성형무소에서 만든 벽돌이라는 표시다.
  5. 5정문과 뒤쪽 담장의 10m 망루를 올려다보고, 감시창이 8면에 나 있는 점을 확인하고, 담장이 원래 1,161m였고 지금은 앞면 80m와 뒷면 200m가 남았다는 안내판 수치를 걸음으로 가늠한다.

참고한 공식 출처

국가유산포털 - 서울 구 서대문형무소 (사적)서대문형무소역사관 - 어제와 오늘서대문형무소역사관 - 옥사전시서대문형무소역사관 - 야외전시